강운구
강운구 작가는 1970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표적인 작가로, 산업화 과정에서 붕괴되고 사라져간 농촌의 풍경들을 담아냈다. 어린 아이를 업고 있는 어머니, 고된 노역으로 갈라진 농부의 손바닥, 이제는 거의 보기 힘든 초가집 등 강운구의 사진은 잔잔하지만 강렬 한 그만의 서정성을 드러낸다. 지금은 사라지거나 단절된 우리의 농촌과 민속 그리고 전통의 모습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강운구 작가는 현시대에 대한 저항의 방법으로써 그 흔적을 끊임없이 찾아 발견하고 이를 기억한다.
용대리 , 1972(2001), 제라틴 실버 프린트, 37x55.5cm
박형근
박형근 작가는 현실 세계와 지각 사이에 발생하는 불일치를 상상력에 기대어 사진 이미지로 펼쳐보인다. 인간의 존재가 곳곳에 암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재의 공간으로서 묘사되는 자연에는 작가가 느꼈던 미스터리하고 강렬했던 경험이 담겨 있다. 숨죽인 듯한 적막과 조작되고 변형된 장면들, 그리고 마치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강한 색채들은 장면 속에 은밀하게 감춰진 내러티브와 사건, 역사들을 건드리면서 관람자들을 상상의 세계 속으로 유도한다.
Tenseless #5, Swamp , 2004, 디지털 C-프린트, 100x125cm
백승우
백승우 작가는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한 화면에 병치하거나, 허구의 장치를 실제 공간에 끌어들이는 등 조작과 재구축을 통해 실재의 세 계를 포착한다. 그리고 사진 매체가 지닌 일반적인 속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사진 영역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Real World) 시리즈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왜곡되어 가는 사회와 개인 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중 (Real world II>는 외국 유학 생활 동안 한국인으로서 겪었던 작가의 경험이 담겨 있다. 늦은 밤 주택가에서 펼쳐지는 장난감 병정들의 '전쟁'은 서구가 바라본 한국 의 정체성과 그 안에서 고정되어버린 개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 처럼 허구적 장치로 연출된 그의 사진들은 실제보다 더 실제와 같은 풍경을 그려낸다.
Real World II_170 , 2008, 디지털 C-프린트, 180x225cm
오진령
오진령 작가는 어린 시절에 6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서커스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물과 몸짓 그리고 공간의 관계를 다룬다. 그의 초기 작품인 곡마단 사람들) 시리즈가 유랑 극단과 어릿광대의 삶을 하나의 피사체로 다뤘다면, <거미여인의 꿈> 시리즈는 작가 스스로 어릿광대가 되어 자연 속에서 유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미여인의 꿈 - Self Panorama, 2006, C-프린트, 131x267cm
이갑철
1960~70년대 이후 이어진 리얼리즘 사진의 계보는 강운구의 농촌 마을 풍경이나 육명심의 장승 사진에서 보듯, 한국의 전통과 민속을 주요한 소재로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갑철 작가의 사진에서 등장하는 무당이나 상례 행렬, 부적 등, 샤머니즘이 담긴 한국적 풍경은 이전의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다른 모습을 가진다. 흔들린 초점과 과감하게 생략된 형상, 불안정한 구도 등 충돌과 반동 속에 놓인 그의 사진은 더 발전된 작가의 개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동적인 형식 속에서 포착해낸 풍경은 1980~90년대 급격 하게 이루어진 도시화로 소멸해 간 우리의 전통과 정서를 다시 소환 한다.
꽃을 머리에 없온 소녀들 - 합천 , 1996(2002), 잉크젯 프린트, 49.5x75cm
이강우
이강우 작가는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사진의 지평을 넓히는 시도를 해왔다. 사진과 언어를 탐색하며 개념적인 접근을 모색한 작가는 2004년부터 강원도 남부의 탄전 지대인 철암과 사북을 대상으로 사진 작업을 전개해왔다. 철암천〉 시리즈 는 1960년대 근대 개발 경제기부터 198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국내 주요 석탄 산지로 호황기를 누렸던 철암과 사북 지역을 기록한 사진 작품이다. 그러나 도시 기능과 성격이 급속히 변모하면서 철암 이 표상했던 근대적 정체성은 빠르게 퇴색되어 갔다. 탄광촌 흔적 위 에 층층이 쌓인 현대의 풍경을 통해 이강우 작가는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시간을 어떻게 다루고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작가적 태도와 고민을 제시한다.
철암천, 2006, 디지털 C-프린트, 149x110cm
정연두
정연두 작가는 꿈과 현실을 병치하여 보여주거나, 환영에 수반되는 현실적인 과정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양한 형식의 사진 작품을 선보여왔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Location #26)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이 이루어지는 야외 촬영지의 특성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면은 실제 장소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공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작가는 영화에서, 인위적인 요소를 감추기 위해 사용되는 조명과 카메라 조작, 그리고 특수 기법과 같은 장치들을 더욱 강조하여 오히려 그 인위성을 노골 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가짜와 진짜,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그의 풍경은 두 세계 사이의 경계 위에서 위태롭게 펼쳐진다.
Location #26, 2007, C-프린트, 120x153cm
주명덕
주명덕 작가는 다큐멘터리 사진, 인물 사진, 도시 풍경 사진 등 다양한 형식으로 한국적인 이미지를 탐색해왔다. 1960-70년대에 '기록'의 형식을 바탕으로 사진의 형식적 가능성을 제시했던 작가는, 1980년대 말 흑백의 풍경 작업을 선보이면서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 을 복원하려고 시도하였다. 오랜 시간 동안 작가가 한국의 산과 대지를 찾아 다니며 기록한 <풍경> 시리즈는 조국에 대한 그의 애정만큼이나 깊고 짙은 검은 빛의 풍경을 보여준다. 화면을 뒤덮은 검은 톤과 그 안에서 꿈틀대는 생명의 약동, 이처럼 예리하고 섬세하게 포착된 풍경은 대상의 구체적 형체를 드러내 보이면서 색의 이면으로 대상을 흡수한다. 대상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주명덕 작가가 행하는 형식적 실험은 대상의 존재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기록'으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풍경 , 2000, 젤라틴 실버 프린트, 50x75cm
최병관
최병관 작가는 순수 사진을 다루는 작가로, 대상을 담아내는 방식에 있어 다큐멘터리 사진과 차이를 둔다. 그의 사진은 대상을 닮은 이미 지로서 재현하기 보다, 표상된 미적 이미지로서 감각을 환기시킨다.
2000년대에 작업한 자연> 시리즈는 그의 작업의 주된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별할 것 없는 대나무와 물결은 사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일종의 추상적인 형태로 그려진다. 일상생활에서 포착하여 어떠한 의미나 환상도 존재하지 않는 최병관 작가의 풍경은, 의미와 시간이 소거되어 부재로 가득 찬 열린 세계로 연결된다. 이로 인해 야기되는 개별의 기억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그의 풍경에 잠시 머물게 한다.
대나무, 2002, 젤라틴 실버 프린트, 48x48cm
한정식
한정식 작가의 사진은 존재에 대한 오랜 성찰을 담고 있다. “모든 존 재는 고요의 경지에 이르러 존재를 드러낸다”는 그의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요'가 지닌 적정 적멸의 경지가 그가 이르고자 하는 궁극이다. 익숙한 형태의 피사체를 작품 전면에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제된 듯한 풍경은 사실적이기보다 초현실에 가깝다. 이처럼 존재 인식과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보존한 그의 사진은 모더니즘적 순수 사진의 전형을 보여준다.
고요 - 충북 단양, 1998(2002), 젤라틴 실버 프린트, 45x45cm
허용무
허용무 작가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이어진 도시화로 파괴되고 유린된 농촌의 현실과 기층민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이농 현상으로 인한 농촌의 여러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을 사진의 매체를 통해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 과정에서 그가 추구했던 것은 사건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증거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작가의 해석으로 탐구한 사진이다. 진도 주민들의 삶과 문화를 담은 원형의 섬 - 진도 시리즈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기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옛것과 새로운 것이 어떻게 충돌하고 타협해 가는지 보여준다. 이처럼 그의 풍경은 작가의 주관적인 개입이 사실 을 왜곡시키기보다 오히려 현실에 감춰진 진실을 더 분명하게 보여 줄 수 있음을 증명한다.
회동, 2001, 혹백 프린트, 39.5x58.5cm